봉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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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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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법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이며,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이다

‘대웅전’은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 즉 대웅이라는 일컬은 데서 유래한다 .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의 좌우에서 협시불(脇侍佛)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인하거나 ,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기도 한다 .

이 밖에도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
봉선사는 특징적으로 운허큰스님께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경전을 한글번역작업을 하신분이라서 대웅전이라는 명칭을 큰법당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서 편액을 달았다 .

봉선사는 6·25전쟁으로 1951년 3월에 법당 등 14동 150칸의 건물이 완전히 소실된 후, 59년에 범종각이 건립된 데 이어 63년에는 운하당(雲霞堂)이 세워졌다. 대웅전인 큰법당은 1970년 당시 주지였던 운허스님이 중건했다.
운허스님은 이때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 ‘큰법당’이라 이름 지어 한글 편액을 달았다. 불교 대중화의 뜻을 담은 상징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찰의 한글 편액으로는 이것이 처음이다. 단정하면서도 원만한, 보는 이들이 모두 좋아할 글씨다.
큰법당 내부도 3면 벽에 한글로 된 법화경 동판(125매)과 한문 법화경 동판(227매)을 함께 부착해 놓아 눈길을 끈다.
큰법당 편액 글씨의 주인공은 만년에 구미에서 활동한 운봉(雲峰) 금인석(1921~92)이다. 포항 출신으로 도쿄대 경제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운봉은 고등고시(행정과)에 합격, 국회 재경위 전문위원까지 역임한 관료 서예가다. 대구의 서예가 석재(石齋) 서병오(1862~1936)를 사사했다 한다. 큰법당 기둥에 걸린 네 개의 주련도 한글로 되어 있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하고’이다. 화엄경에 있는 보현보살의 게송을 운허스님이 한글로 옮긴 것이다.
이것은 석주(昔珠) 스님(1909~2004)의 글씨다. 서예 글씨를 잘 쓰는 스님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석주 역시 역경사업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운허와 함께 경전 한글화에 매진했다. 그는 자신이 오래 머물렀던 서울 칠보사의 대웅전 편액을 자신이 쓴 한글 ‘큰법당’으로 바꿔 다는 등 한글로 된 편액이나 주련 작품을 많이 남겼다.
큰법당 뒤에 있는 조사전(祖師殿)의 한글 주련 4개도 눈길을 끈다. 내용은 ‘이 절을 처음 지어/ 기울면 바로 잡고/ 불타서 다시 지은/ 고마우신 그 공덕’인데, 운허와 석주의 합작품이다. 운허가 짓고, 글씨는 석주가 쓴 것이다. 아름다운 한 편의 시와 같은 글귀로, 한문 주련 글 못지않게 멋지다. 조사전 편액은 김천 출신으로 진주와 부산에서 활동한 서예가 청남(菁南) 오제봉(1908~91)의 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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