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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봉선사 스님들이 밝혀주는 희망과 치유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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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5-20 11:31 조회5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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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565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코로나19, 희망과 치유 밀운·초격스님 ‘힐링 법담’
“사찰 일주문에 ‘코로나 구휼미’ 권장, 사람 살리는 자리이타행”

“어른은 잔소리 하면 못 써. 그냥 하는 걸 보고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하면 그 뿐이야.”(봉선사 회주 밀운스님) “봉선사에 돌멩이 하나 조차 어디 있는지 다 아셔서 무슨 일이든 여쭈고 하면 실수가 없으니 늘 감사하죠.”(봉선사 주지 초격스님) 남양주 봉선사에 살고 있는 밀운스님과 초격스님에게 서로 ‘한 말씀’ 부탁했더니 돌아온 답은 ‘칭찬과 감사’였습니다.

봄볕 완연한 4월16일, 밀운스님은 “봄이야 봄, 꽃내음 참 좋다”며 허공을 향해 연신 환한 웃음을 보였고, 초격스님은 그런 스님의 건강한 모습에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해 넘기면 구순이니 이제 많이 늙었지. 평생 안 쓰던 알람시계 없으면 아침마다 제시간에 눈도 못 뜬다니까.” “요즘도 회주 스님 포행 나오시면 종무원들이 몇시 몇분인지 정확히 맞추는걸요.” 두 스님의 소소한 일상이야기도 살짝 엿들으면 훈훈하기만 합니다.

봉선사에는 조실 월운스님도 계십니다. 올해 94세 연세에도 컴퓨터 앞에서 밤새도록 한문경전을 번역하시곤 합니다. 건강을 염려하는 제자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평생 해온 역경을 지금도 여전히 하십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우리 곁에 부처님이 오신 뜻을 여쭈었더니 월운스님은 밀운스님 방을 가리키면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회주 스님에게 좋은 법문 청해봐요. 내가 양보했으니 냉면 한 그릇 사라고 해야겠어. 허허허.”

한가로운 봄날 오후입니다. 스님들의 웃음과 농담, 여유와 덕담 속에서 “과연 부처님이 오셨구나” 했습니다.

 

코로나로 사업 망한 사람들
마트에 ‘코로나 장발장’ 급증
불교가 나서서 ‘구휼미’ 보급
“사람 목숨 살리는 귀한 법문”
출가자 불교인구 줄어든다 해도
생멸이 본래 없는 불교 안 망해
계율수지하고 정진하면 문제없어
자비행 이타행 실천하면 ‘부처’

어른이 간섭하면 대중화합 안돼
봉선사가 조용히 잘 살아가는 건
월운스님 묵묵히 공부에 임했고
각자 자기 역할 잘 수행한 덕분
“곧 구순이지만 나는 부목이야”



4월16일 봉선사 회주 밀운스님 주석처에 주지 초격스님이 찾아가 차를 마시면서 법담을 나눴다. 밀운스님은 “우리 주지 스님 덕분에 뜨신 방에서 건강하게 산다”고 말했고, 초격스님은 “큰스님 덕분에 사중의 모든 일이 원만하게 돌아간다”고 감사해했다.

봄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 유난히 맑고 고른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웃는 밀운스님. 누가 구순 앞둔 노스님이라고 할까. “나? 봉선사 부목이여 부목. 골다공증 안 걸리려고 햇볕 아래서 노가다 좀 뛰었지. 하하하.” 스님의 건강이 염려되어 인터뷰 요청을 망설였던 기자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봉선사에 돌멩이 하나도 어디 있는지 다 꿰고 계신다”는 주지 초격스님의 귀띔은 ‘실화’였다.

“내가 평생 운허스님 모시고 봉선사에 산 셈이니까. 지상뿐 아니여. 지하에 상수도 하수도 전기배선 다 알지. 좌우지간 밖에서 포크레인 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나 나가 본다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엊그제도 8시간 내내 서서 지켜보았지. 배관 하나 잘못 파면 일이 커지거든. 일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물으면서 일한다니까. 내가 부목인걸 그네들도 아는게지. 하하하. 오래 산 사람이 이럴 때 필요해, 다른데 필요하지는 않아.” 밀운스님은 말했다. “8시간 일해도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괜찮더라고. 90평생인데 건강해. 아픈데 없어. 우리 주지 스님이 방 뜨시게 해주고 마음 편히 잘 챙겨주시는 덕분이야.”

코로나로 힘겨운 이들에게 안심법문을 청했더니 스님은 대뜸 ‘구휼미(救恤米)’ 이야기를 꺼냈다. 절마다 쌀 모아서 관청 통해 불우이웃 골라 지원하는 형식은 NO. 사찰 일주문 앞에 ‘자비의 쌀’을 쌓아두고 누구나 언제든 가져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오래된 냉장고와 같은 대형 박스에 5kg 10kg 쌀포대를 쟁여두면 사람들 눈 피해서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업 망한 사람들은 남에게 돈 천원 꾸어 쓰기 어렵고 밥 한그릇 얻어먹기도 어려워요. 그런 사람들이 한강 갈까 산에 갈까 한다구. 죽을 수도 없고 도둑질할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 밤에 차몰고 와서 몰래 가져간다니까. 사람 목숨 하나 살리는 일 아닌가? 우리 불교가 그동안 시주 받고 잘 살아왔는데 이런 시대에는 한량없이 베풀어야 해. 전국 사찰에서 ‘구휼미 캠페인’을 하면 얼마나 좋겠어. 힘든 사람에겐 쌀 한 톨이 가장 귀한 법문이지.”

스님 말대로 요근래 ‘코로나 장발장’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훔치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다 붙잡히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배가 고파 ‘코로나 장발장’이 될 위기에 처한 이들을 선제적으로 구제한다는 목표로 3만원 상당의 물품을 무료로 받아갈 수 있는 ‘0원 마켓’도 있다. 마켓 이용자들은 대부분 멀끔하게 차려 입고 와서 쌀과 잡곡 달걀 통조림 된장 고추장을 가져간다고 하니 스님이 제안한 ‘코로나 구휼미’가 허투루 듣고 넘길 말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종교활동에도 제약이 많고 사찰에 신도들이 오지 않으니 절살림도 예전과 같지 않아서 사찰과 스님들이 신음하는 현실. 밀운스님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출가자도 없고 신도들도 안 오고 다 망하게 됐다고들 하는데, 다른 종교는 몰라도 불교는 안 망해요. 왜 안 망하느냐? 망할 것이 없어. 생멸이 본래 없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불교의 세계관인데 불교가 망할 턱이 있나? 생사가 없는데 뭘 망해? 우리는 끄떡없어요.”

다만 한가지, 스님은 예나 지금이나 ‘지계정신’만을 강조했다. “조계종은 계를 앞세워서 살아야 해요. 한때 전국 교구본사마다 율원을 만들어 청규를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현이 어려웠지. 불교가 올곧이 명맥을 이어가려면 오직 하나, 스님네들과 불자들이 다함께 계를 지키면서 부단히 정진하면 한국불교는 굳건하게 살아남아 제 역할을 다 하게 됩니다.”

스님은 대중법문 할 때마다 잊지 않고 당부하는 말이 있다. ‘너도 부처 나도 부처’라는 말이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누구나 본래 불성(佛性)이 있다는 말이지, 누구도 부처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부처님처럼 자비심으로 이타행을 실천할 줄 알아야 부처지.” 밀운스님은 군복무 시절 면회 온 어른 스님이 법당서 나와 “부처님 조각상이 시원찮게 만들어졌다”고 한 말을 “부처가 시원찮다”로 잘못 알아듣고는 보름간 끙끙 앓다시피 하다가 스님을 찾아가 오해를 풀고 “시원찮은 것은 중생이고 부처님은 부처님”이라는 결론을 얻고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시원치 않은 것은 중생일 뿐 부처님은 부처님’, 불행불(佛行佛)이라는 말에 담긴 힘으로 스님은 지금껏 살아왔다고 했다. 이 생각은 훗날 ‘불행불(佛行佛), 승행승(僧行僧), 인행인(人行人)’으로 이어졌다.

‘적멸의 즐거움(寂滅爲樂)’에 대한 이야기도 스님이 늘상 하시는 법문. <열반경>에 나오는 말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고 했어. ‘항상한 것은 없다/ 생하면 반드시 멸하는 법/ 생하고 멸함이 끊어진 뒤에야/ 적멸의 즐거움을 안다’라고 번역하는데 내 생각은 달라. 항상 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서 ‘생하고 멸함이 끊어진 뒤’가 있을 수 있나. 적멸은 고락생멸이 끊어진 상태인데 즐거움(樂)이라고 하면 말이 안되지. 나는 그래서 이(已)는 마침이 아닌 기(己)로, 락(樂)은 ‘락’이 아니라 ‘악’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악’은 자성 가운데의 핵. “적멸 가운데서 만법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그렇게 하면 생하고 멸할 것도 없으니 단멸(斷滅)이 없다는 뜻이 되고, 적멸 가운데서도 한 생각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는 뜻이니 ‘낙’보다 ‘악’으로 번역돼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스님은 글에는 무원근(無遠近) 의미가 많이 들어있다. 1985년 성수, 고산, 원담, 정무, 선래, 해안스님 등을 모시고 스리랑카 불치탑 순례를 갔을 때 일이다. “새벽 108배를 마치자 불현듯 무원근(無遠近)이 떠올라 환희심이 일어났는데 나중에 원담스님에게 게송을 보여드리고 ‘락’이 아니라 ‘악’으로 읽어야 한다는 뜻의 내용을 말씀 드렸더니 ‘언제 그렇게 공부했느냐’는 말씀을 하셨다”고 일화를 들려주었다.

최근 BTN불교TV 회장 성우스님이 40년만에 재출간한 <열반사상-선사들이 남긴 생의 마지막 게송>에도 아난존자의 열반송 ‘열반상아정(涅槃常我淨)’이 명기돼 있어 여기에 밀운스님의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열반사상>을 수십권 사서 전국 강원과 교육기관에 보냈는데 다들 일리 있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훈습이 되어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모양이야. 그러니 번역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지. 한번 잘못해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애를 먹는다고.”

초격스님은 “얼마 전 능엄학림 특별강좌에서도 큰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상세하게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며 “항시 후학들을 위해서 좋은 말씀을 해주고 이끌어 주시는 스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스님은 또 “종단에도 좋은 변화가 될만한 사안을 조언해주시면 귀담아 듣고 우선적으로 봉선사에서 먼저 실행하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어른 스님이 계시니 늘 배우면서 덕을 본다”고 했다.

밀운스님은 주장자를 짚고 ‘오늘 날씨 참 좋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동구밖까지 취재진을 배웅했다. 한 발 한 발 힘있게 걷는 스님 모습에 무례를 무릅쓰고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법’을 여쭈었다. 스님은 빙긋 웃으면서 ‘너만 알라는 듯’ 말해줬다. “남 미워하지 마. 사람은 다른 사람 미워하느라 늙는거여.”

 

월운스님은 날마다 포행을 하고 날마다 역경을 한다. 4월16일 상좌 초격스님이 방문을 열자 여전히 컴퓨터방에서 한문경을 번역하고 있었다.
월운스님은 날마다 포행을 하고 날마다 역경을 한다.
4월16일 상좌 초격스님이 방문을 열자 여전히 컴퓨터방에서 한문경을 번역하고 있었다.

월운스님, 오늘도 컴퓨터 앞에서 한문경 번역


세수 94세에도 날마다 역경
제자들 걱정에 밤에는 커튼
공양하고 포행, 규칙적 생활
위트 넘치고 맑은 웃음 선사


30여년 전, 봉선사 주지 월운스님 시자로 살았던 초격 사미는 현재 봉선사 주지다. 스승은 구순이 훌쩍 넘어 봉선사 조실이 됐고 제자는 종단의 중진이다. “밤에 잠을 잘 주무셔야 허리에도 좋고 컨디션이 좋은데, 우리 스님께서 요즘도 컴퓨터로 한문경전 번역하느라 밤에 시간가는 줄 모르신다”며 은사를 걱정하는 초격스님은 “하도 걱정하니까 아예 컴퓨터방 커튼을 쳐놓고 하신다”며 “역경은 우리 스님의 평생 원력”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호랑이처럼 엄했던 월운스님 옆에는 어떤 시자도 반년을 못버텼지만 3년을 시봉한 유일한 제자가 초격스님이다. 월운스님이 지어준 초격(超格)이란 이름도 격을 뛰어넘는 출가수행자가 되라는 스승의 경책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월운스님을 만난 4월16일에도 스님은 점심공양 후 포행을 하고는 작은 컴퓨터방 책상에 앉아 역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취재진이 들어가자 조금 멋쩍어 하며 얼른 컴퓨터를 껐다. 차갑고 엄준했던 스님의 모습은 너무나 맑고 깨끗하고 청정했다. 위트 넘치는 농담으로 이따금씩 큰 웃음도 선사했다.
 

아이처럼 맑은 웃음을 보이는 월운스님
아이처럼 맑은 웃음을 보이는 월운스님

월운스님은 1950년대 초 부산 범어사에 있었던 ‘육군전몰장병 안치소’ 이야기도 상세히 들려줬다. 당시 유엔군사령관과 고위직 정치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월운스님에 모두가 놀랐던 일, 이 자리에서 불교계 가장 시급한 불사는 역경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일화, 그 날 이후로 역경불사 지원금이 나왔던 경사…. 스님은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당시 일화를 말했고, ‘기-승-전-역경’으로 결론을 냈다. “내 소원은 우리 스승님이 간절히 원했던 소원과 같지. 역경은 너나 나나 개인의 원이 아니여. 국가적인 원이요 역사적인 원이라.”

월운스님은 1965년부터 2002년까지 법보종찰 해인사에 소장된 고려대장경을 총 318권의 한글대장경으로 풀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10여년간은 개역과 전산화에 힘쓰면서 현대불교사상사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다. 대한민국 문화예술발전 유공자에 대한 문화훈장인 은관문화훈장 서훈자로 선정된 이유다. 당시에도 월운스님은 “은사 스님이 시작하고 거의 다 해놓은 것을 마무리만 했을 뿐인데 내가 전부 다 한것처럼 돼버렸다”며 은사 운허스님에게 공을 돌렸다.

스님은 처음 본 기자의 성씨가 하(河)라고 하자, “하에 물(水)이 붙은 것은 물에 빠지지 말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사람이 되라는 소리”라며 환하게 웃었다. 올해 94세 월운스님은 한가로운 일상 속에서 해맑고 청정한 아이처럼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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